H-ESG소식
[9.1 H-ESG포럼 현장] 인권경영과 기업 인권실사 의무화법 동향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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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43회 작성일 22-10-0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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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오전 9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윤석민 기업과 인권 전문관님을 모시고 <인권경영과 기업 인권실사 의무화법 동향과 과제>를 주제로 <H-ESG 포럼> 조찬학습모임을 열었습니다. 지난 2월 유럽연합(EU)은 기업의 공급망 인권 침해와 환경 훼손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법안(공급망 실사 의무화)’을 공개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수출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국제사회의 공급망으로부터 공시 및 실사 요구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 인권경영은 ESG의 핵심적인 한 축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를 관장하는 윤석민 전문관께 관련 동향을 들어봤습니다.
더불어 금번 포럼에는 유최안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님이 걸음해 귀한 말씀을 나눠 주셨습니다. 인권경영과 기업 인권실사 현황을 확인하기에 앞서 유최안 부지회장님의 특별 사례발표가 있었습니다.
유최안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유최안 부지회장과 조선하청지회 노동자들은 삭감된 임금의 원상 회복과 노조 인정 등을 요구하며 지난 6월 2일 농성에 나섰습니다. 1년여간 이어져 온 교섭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유최안 부지회장은 가로, 세로, 높이 1m 철장에 자신의 몸을 넣고 용접을 했습니다. 그렇게 0.3평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뒀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고 모두에게 물었습니다.
2016~2017년 조선업계의 불황은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청노동자들은 폐업이나 임금 체불, 부당 해고의 문제에 직접 노출된 상황이었고 이 문제를 함께 힘을 모아 해결하기 위해 노조를 설립합니다. 하지만 조선소 하청노동자의 대량해고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2019년 들어 조선업은 호황기에 접어 듭니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왔지만 지금도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다단계로 쪼개어진 하청구조, 저임금, 장시간 노동, 빈번한 산업 재해와 위험한 일터는 모두 하청 노동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살기 위해 시작한 파업이었습니다. 유최안 지부장은 이미 작년에도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이 진행됐지만 하청업체를 비롯해 특히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에서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원청업체는 자신들은 법적 책임의 주체가 아니니 당신들 회사(사내하청업체)에 가서 파업을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탄압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을 계속 겪습니다. 올해 사회적인 파장이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다는 유최안 지부장은 그럼에도 점거에 나선 이유가 세 가지라고 말합니다. “첫 번째는 외부에 현재 상황을 알리자, 두 번째는 진압부대를 비롯한 누가 들어와도 끌려 나가지 않아야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합원들을 폭력으로부터 지켜야겠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유 지부장은 "조선소는 고용 불안이 심하고 강도 높은 일을 유지하는 과정에서 몸이 상합니다. 제가 마지막 일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라고 생각합니다. 50대 이상의,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을 볼모로 잡고 산업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차별, 하청노동자의 낮은 임금, 열악한 업무 환경이 가져오는 위협 등 조선소의 문제를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무모해 보이는 파업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홍지욱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위원장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이를 불법 파업으로 규정했고 공권력 투입까지 예견됐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노동자들은 지난 7월 22일 22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들과 합의했습니다. 당시 협상을 총괄한 홍지욱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함께 자리해 현재 진행 중인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합의 내용은 기존 노조 요구안보다 완화됐습니다. 임금 4.5% 인상과 상여금 150% 지급, 폐업 하청업체 소속 조합원 46명의 고용승계가 전부였습니다. 공권력에 의해 파업이 해산되고 노조가 와해되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에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홍지욱 부위원장은 임금 인상에는 실패했지만, 사회적으로 하청노동자들의 왜곡된 고용구조와 저임금 상황이 폭로됐기에 아쉽지만 잘 싸웠다고 평가합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 약 1만명의 저임금 구조 개선 방안 마련을 위한 원·하청 노사TF 구성에 합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구조 개선 방안 마련이 TF의 주 목적이지만, 이번 파업의 후속 조치 의제들도 함께 올려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홍 부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만이 아니라 조선업 전체의 다단계 하청구조, 고용 불안정, 저임금 구조, 중대재해 발생 등 전반적인 산업 구조 개선을 위해 경남도지사, 노동부, 원·하청, 노조가 함께하는 협의체를 지역 차원에서 구성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건전한 노사문화 수립, 불법 파업 재발 방지를 위한 것”이라며 노조에 470억 규모의 손배소를 제기했습니다. 22년차 용접공 시급이 10,350원에 불과한 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을 위한 50여일간 파업의 대가인 것입니다. 쟁의권 등 노동3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기본 권리이지만, 정리해고에 맞선 쟁의행위나 불법파견 등 원청기업의 횡포에 대응하는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계속되어 왔습니다. 홍 부위원장은 이에 “노동 및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가칭)손배·가압류 노동법 개정본부가 구성되어 연말 내 노동조합법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홍 부위원장은 조선업의 산업 구조를 바꾸는 것이 노조의 오랜 숙원사업이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지난 불황의 시기에 숙련공을 정리해고 할 것이 아니라 재교육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어야 합니다. 이제 다시 호황에 접어들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저임금이나 왜곡된 하청구조를 개선하고 안전한 일터의 요건을 갖춰야 합니다.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동시에 불황에 대한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윤석민 국가인권위원회 기업과 인권 전문관
특별 사례발표 후 윤석민 전문관의 주제발표가 이어졌습니다. 1970년대 다국적 기업의 인권침해, 그리고 이를 통제할 수 없는 거버넌스의 공백 속에서 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문제가 되면서 인권 실사 개념이 대두됩니다. 윤 전문관은 "실사(due diligence)는 기업이 스스로의 부정적인 인권과 환경에 대한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위험을 식별하고 완화하기 위한 대응조치 및 구제책을 마련해 소통하는 것"으로 "결과를 공시(disclosure)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를 넘어 주체화되는 실사 방식을 가져가는 것이 유럽의 현재 주된 흐름으로 국내에도 도입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즉, 실사는 “시민사회와 노동조합, 지역주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경영의 주체로 담지하려는 절차”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수출 기업을 긴장하게 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의 수출 경쟁력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민 전문관은 지난 2018년 프랑스 시민단체인 셰르파(Sherpa)가 삼성전자를 기소한 사례를 언급했습니다. "노동권을 존중한다고 홍보하는 삼성의 상업적 관행에 대해 소송을 제기해 삼성의 윤리경영에 대한 약속과 삼성의 일부 공급망에서 목격되는 노동조건 사이에 간극이 있었고, 셰르파는 삼성전자를 인권경영 사기죄로 기소 합니다. 이는 프랑스에서 2017년 제정된 모기업 및 대표기업의 실천감독의무에 관한 법(실천감독의무법)이 제정되면서 가능해진 일이었는데요, 모기업 및 대표기업에 해외지사와 가치사슬에 발생하는 인권 및 환경 침해 예방을 위한 조치를 시행할 것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법입니다." 이 법의 영향으로 벨기에, 캐나다, 노르웨이, 독일 등의 국가에서도 법이 제정되었거나 법제정을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내에서도 국민권익위원회, 고용노동부 등 실사법제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윤석민 전문관이 실사를 담당하고 있고요. 윤 전문관은 SM 엔터테인먼트, 풀무원, 세아 등 담당한 실사 사례를 중심으로 현장의 상황을 짚어주었습니다. 그는 "실사가 갖고 있는 힘은, 개별 기업의 사안에 의무 부담과 법률상 제약이 아니라 시민사회, 미디어 등이 해당 기업에 사회적 규범 준수를 요청하는 것에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플랫폼 기업이 일으키는 여러 문제를 법을 근거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부정적 임팩트를 크게 가져오고 있는데 해결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실사입니다. 그리고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외부 투자를 받지 못하고 국제적인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인권경영의 국제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유연하고 포괄적이죠. 어찌 보면 법물신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 비정규직 차별 철폐의 가장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난해 12월 인권정책기본법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지만, 기업의 인권경영과 관련한 제도 마련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윤석민 전문관은 “올해 3월 민간기업 인권경영 시범사업 추진계획을 수립했고 한국거래소에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하는 300여개 기업 중 협의하여 3개 기업의 인권경영 실사를 진행했다”고 말합니다. 국내 정책 및 제도의 시행 속도와 무관하게 독일을 시작으로 유럽으로 확산하는 공급망 실사법은 인권 가이드라인의 준수를 앞당길 텐데요, ESG 경영의 글로벌 핵심 이슈로 떠오른 인권경영을 둘러싼 상황을 예의 주시해봅니다.
이른 아침부터 많은 분들께서 자리를 함께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신효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연구원, 사진: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수석연구원, 녹취: 노영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보조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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